

" 글을 써서 세상을 바꾸는 의사가 되자 "
2024.5.11. 제 1회 공의모 포럼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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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이 아닌 설득되는 말 하기
- 박한슬 약사, 중앙일보 필진
옳은 말에 설득되지 않는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까?
박한슬 약사/메디컬라이터
의사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상황이 언제일까. 의사 지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논리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데도 상대가 설득되지 않는 때를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분명 의학적으로 검증된 가장 최선의, 타당한 진료를 했는데도 심평원에서 ‘삭감’을 당했다. 받을 돈을 못 받았는데 유쾌한 사람은 없겠지만, 지인들의 반응을 살피면 그 감정은 분노보단 모멸감에 더 가까워 보였다. 나에게 이로울 게 없는 삭감이란 결과도 싫긴 하지만 비합리적이고 이해 어려운 방식으로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 자체가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의사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의사들은 생애과정 내내 합리성을 머릿속에 새기기 위한 수련을 받았다. 아무리 명망 있는 교수라도 증례 보고 하나에 자신의 주장을 접어야만 할 수도 있으며, 임상 현장에서 독단적 아집으로 틀린 결정을 내렸다간 환자의 명줄이 끊긴다. 그러니 의사로 길러진 이들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의사라는 직업인으로 잘 기능하는 사람이면 그래야만 한다. 정상적인 의사로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 그런 사고회로가 머릿속에 빚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지점은, 병원 밖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겐 그 정도로 강한 압력이 작용할 일이 드물다는 점이다. 조금 허투루 결정을 내린다고 사람이 죽는 일도 없고, 비합리적 선택에 동료 집단의 호된 질책이 따르지도 않는다. 그러니 병원 밖 세상에선 되레 의사가 이방인이다. 보통 사람에겐 정말 그렇다. 내 생명을 구했다며 거들먹대는 괴팍한 외과 의사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절한 한의사가 더 고맙다. 논리적으로 내 말이 옳다며, 나를 쏘아붙이는 게 비정상인 것이다. 논리로만은 설득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 결코 이상한 게 아니다.
이런 불일치를 대체 어째야 할까.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현재까지의 의사 집단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을 애써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고, 옳은 말로 설득되는 이들과 합리로서만 대화하는 것이다. 정부 관료들이나 정치인들도 충분히 합리성을 갖춘 사람들이고, 보통은 이들과 협의해 합리적인 정책을 조용히 처리하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민주 국가에서는 정치인들이 ‘보통 사람들’에게 표를 받아야만 당선이 된다는 점이다. 사회의 여론이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면 표에 묶인 정치인도 휩쓸릴 수밖에 없고, 정치인이 통제하는 관료들도 간접적으로 여론을 따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방법은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을 직접 설득하는 게 거의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해법이다. 그런데 통상적인 의학 교육 과정에서 이런 내용을 배우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야 잘 이해를 하는지, 또 어떻게 얘기해야 설득이 되는지를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설득하나.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전문 분야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현대적인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역사가 100년을 넘기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 길고 긴 역사를 모두 짚어가는 건 의미가 없으니, 강연의 핵심만 요약한 아래 세 가지 내용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 상대가 왜 들어야 하는지의 필요성을 만들어 줘라
▶ 미리 준비하고 있다, 시의성 있는 시점에 터트려라
▶ 구조화된 형태로 비유를 적극적으로 동원해라
의료의 미래를 위해서, 더 나아가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는 ‘글쓰는 의사’가 더 늘어야만 한다. 부족한 깨달음이지만 부디 이 세 가지가 앞으로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시기를 빈다.
박한슬이 추천하는 책 「이상한 정상가족」

직업적으로 글을 쓰다 보면,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렇지만 특정한 주제를 정해두고 깊이 있게 읽는 독서보단, 취미로서 그때그때 관심 가는 책을 집어 드는 경우가 훨씬 많은 사람에겐 그런 요청이 퍽 부담스럽다. 특히나 무작정 읽을법한 양서(良書)를 추천해달란 요청이 가장 어려운데, 뾰족하게 벼린 목표와 효과에 대한 고려 없이 ‘마냥 좋은 책’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서다. 다행히 이번 강연은 주제가 비교적 명확하니, 고민할 건 효과다.
처음엔 조선일보에 기고했던 ‘박한슬의 마음 읽기를 도와주는 책’ 중 한 권을 꼽아 소개할까 했으나, 생각을 바꿨다. 추상적인 방법론을 소개하는 책보단 모범적으로 잘 쓴 사례를 직접 읽어보고, 그 방법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관점에서 「이상한 정상가족」은 정말 모범적인 사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하고, 수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라서가 아니다. 정말 치밀한 전략으로 잘 쓰인 책이라서다.
얼핏 제목만 봤을 땐 여성주의를 다루는 책일 것 같지만, 실제로 책의 주된 내용은 ‘아동학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의 발간과 저자의 여러 활동을 통해 아동학대법이 개정되는 성과가 나왔다. 실제로 세상을 바꾼 책 중 한 권인 것이다. 아동학대라는 중요한 사회문제에 주목하는 것도 좋겠으나, 책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저자의 서술 방식이다.
저자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시민단체를 거친 후 여성가족부 차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가다듬은 전략적 글쓰기의 요체가 책 한 권에 오롯이 녹아있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부각하고, 본 얘기에 앞서 어떤 것을 먼저 내세우는지를 주목하며 읽어보길 권한다. 이 정도로 치밀한 글쓰기를 할 수만 있다면, 현재 의료계가 직면한 문제들을 동료 시민들께 설득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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